곡성을 보고 (스포일러 있는 평론)
곡성 - 2016
곡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집이 허술한 영화다. 여러 스토리를 두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만 편집에 실패해서 그냥 관객에게 던지는 식이다. 이런 영화 더 이상 찍지 않았으면 했는데 진심 실망이다.
영화 곡성에서 볼 만 한 것은 황정민의 굿판이다. 대략 5분 간 이어지는 굿판은 브랜드 황정민의 가치를 보여준다. 더러 이어지는 코믹한 장면도 볼 만 하다. 벼락을 맞는 장면이나 꿈을 꾸고 일어나는 모습도 코믹스럽다. 시골의 경찰관들의 일상도, 불어터진 자장면도 긴장 속에서 피어나는 헛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스토리로 본 이 영화는 한국판 렛미인에 불과하다. 일본의 어떤 무속인이 귀신에 잡혔다. 아마 그 귀신은 사진을 담는 상자를 매개로 이동하는 듯 하다.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어 영혼을 정착시킨 뒤 상자에 담는 행위가 그것을 대변한다. 일본인 무속인이 어떤 의미에서 실패한 다음, 일광(황정민 분)이 상자를 이어 받았다. 아마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러 어디론가 가나보다.
중간에 무속인들이 죄다 죽어 우물에 빠져 있는 편집 상의 미스터리는 일단 덮어둔다. 왜냐하면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동굴에 있던 일본인 무속인, 자 우리의 가톨릭 청년은 이 일본인을 어떻게 찾았을까? 관객은 묻지 않는다. 정답은 단순하다. 그냥 꿈이다. 앞서도 이런 장면을 여럿 봤기 때문에 금방 짐작할 수 있다. 동굴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의식으로 간다는 클리쉐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한다. "내 마음은 호수"처럼 흔한 방식이다. 그러나 일본인의 재등장으로 관객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누가 맞는 것이지?" 혹은 "누가 범인이지?" 일본인이 악마냐? 아니면 흰 옷의 여자가 악마인가? 아빠(종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일본인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구성을 만든 감독은 관객에게 폭 넓은 선택권을 주겠다 내지는 무엇인가 중의적 의미를 찾게 하겠다는 식의 핑계를 댈 것으로 본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감독의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생긴 결과론적 땜빵 처리에 불과하다. 더 상큼하게 정리하지 못한 이유는 영화를 찍고 편집을 앞둔 시점에 '너무 지루한' 스토리에 걱정이 앞선 때문이 아닐까?
영화 제목, 미놀타 카메라, 한국과 일본, 전통과 현재, 무속과 가톨릭, 자동차와 오토바이 이런 쌍을 지어가며 소위 "중의"를 강요하는 듯한 방법 역시 좋지 않다. 그 프레임이 결국 영화를 망쳤다. 튼튼한 스토리를 구축하려면 여러 방면에서 관객의 마음 속을 들여다 봐야 한다. 틀을 가지고 스토리를 짜 맞추자면 배우도 피곤하고 감독도 한계를 드러내기 쉽다. 가장 큰 문제는 관객들이 끝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밑도 끝도 없이 좌절감을 맛본다는 사실이다.
곡성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주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황정민이다. 굳이 이 영화를 봐야겠다면 미친듯한 그의 연기를 감상할 일이다.
곡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집이 허술한 영화다. 여러 스토리를 두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만 편집에 실패해서 그냥 관객에게 던지는 식이다. 이런 영화 더 이상 찍지 않았으면 했는데 진심 실망이다.
영화 곡성에서 볼 만 한 것은 황정민의 굿판이다. 대략 5분 간 이어지는 굿판은 브랜드 황정민의 가치를 보여준다. 더러 이어지는 코믹한 장면도 볼 만 하다. 벼락을 맞는 장면이나 꿈을 꾸고 일어나는 모습도 코믹스럽다. 시골의 경찰관들의 일상도, 불어터진 자장면도 긴장 속에서 피어나는 헛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스토리로 본 이 영화는 한국판 렛미인에 불과하다. 일본의 어떤 무속인이 귀신에 잡혔다. 아마 그 귀신은 사진을 담는 상자를 매개로 이동하는 듯 하다.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어 영혼을 정착시킨 뒤 상자에 담는 행위가 그것을 대변한다. 일본인 무속인이 어떤 의미에서 실패한 다음, 일광(황정민 분)이 상자를 이어 받았다. 아마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러 어디론가 가나보다.
중간에 무속인들이 죄다 죽어 우물에 빠져 있는 편집 상의 미스터리는 일단 덮어둔다. 왜냐하면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동굴에 있던 일본인 무속인, 자 우리의 가톨릭 청년은 이 일본인을 어떻게 찾았을까? 관객은 묻지 않는다. 정답은 단순하다. 그냥 꿈이다. 앞서도 이런 장면을 여럿 봤기 때문에 금방 짐작할 수 있다. 동굴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의식으로 간다는 클리쉐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한다. "내 마음은 호수"처럼 흔한 방식이다. 그러나 일본인의 재등장으로 관객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누가 맞는 것이지?" 혹은 "누가 범인이지?" 일본인이 악마냐? 아니면 흰 옷의 여자가 악마인가? 아빠(종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일본인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구성을 만든 감독은 관객에게 폭 넓은 선택권을 주겠다 내지는 무엇인가 중의적 의미를 찾게 하겠다는 식의 핑계를 댈 것으로 본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감독의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생긴 결과론적 땜빵 처리에 불과하다. 더 상큼하게 정리하지 못한 이유는 영화를 찍고 편집을 앞둔 시점에 '너무 지루한' 스토리에 걱정이 앞선 때문이 아닐까?
영화 제목, 미놀타 카메라, 한국과 일본, 전통과 현재, 무속과 가톨릭, 자동차와 오토바이 이런 쌍을 지어가며 소위 "중의"를 강요하는 듯한 방법 역시 좋지 않다. 그 프레임이 결국 영화를 망쳤다. 튼튼한 스토리를 구축하려면 여러 방면에서 관객의 마음 속을 들여다 봐야 한다. 틀을 가지고 스토리를 짜 맞추자면 배우도 피곤하고 감독도 한계를 드러내기 쉽다. 가장 큰 문제는 관객들이 끝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밑도 끝도 없이 좌절감을 맛본다는 사실이다.
곡성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주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황정민이다. 굳이 이 영화를 봐야겠다면 미친듯한 그의 연기를 감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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