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윤 교수님, 명복을 빕니다. 2018년 2월 13일 오후에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설날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길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미리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차를 돌려 장례식장으로 가니 이미 떠나신 고인의 영정이 저를 반겼습니다. 아... 좀 더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한 마음에 후회가 그치지 않습니다.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생각하는가 아침 산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 의 그리움을? 그리고 순실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순실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순실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 사장에 앉아 그 소솔한 비취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 날같이 다시 만나세 갓 트인 연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 날같이 다시 만나세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급하고 어려운 일에 처한다면 도와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닐까요? 인간성을 버리고 우리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지 생각해보세요. 최근 일본 큐슈 지방의 대지진 때문에 고통 받는 일본인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잘 되었다, 고소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옳은지요? 참 개탄할 노릇이네요.
이준구 교수님 기사 교수님께서 교단을 떠난다고 하니 시간이 지나도 참 빨리 지났습니다. 이준구 교수님의 미시경제는 쉽게 쓴 교과서가 인상적지만 정작 경제과학생과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칠 때 더럽게 불리한 과목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간고사에서 패망한 이후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른 교수의 교과서와 강의노트로 공부한 뒤 기말고사 시험을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수업이 이준구 교수님의 핵심역량은 아니고 수업 중 카리스마와 속시원한 언변이 좋았습니다. 간혹 "헉..." 이러기도 했지만... 최근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정책 완화" -> "소비심리" 이렇게 됩니다. 부동산 경기부양정책의 기본 논리는 집값이 오르면 "부자된 느낌"을 받아 지갑을 연다... 뭐 이렇습니다. 같은 논리라면 인플레가 되어 명목 수입이 올라도 지갑을 연다도 말이 되고, 보너스를 받아 목돈이 떨어져도 소비가 늘어야 하는데... 실상은 이렇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가계 대출 상환부담도 같이 올라갑니다. 봉급 생활자의 개인 가처분 소득은 더욱 더 줄어듭니다. 대출 없이 집을 사려고 해도 목표액이 올라가 자금을 축적해야 할 부담은 더 커집니다. 저축이자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니 쌓아놓은 돈이 인플레 때문에 가치 하락만 안되도 다행일 듯합니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상당한 중상층이라 일정 소비 수준을 유지합니다. 이들이 경기에 따라 소비 수준을 고무줄 늘이듯 바꾼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느낌을 받는 현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시중자금의 단기적 유통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스폰지처럼 이러한 효과가 흡수될 여러 유인들이 존재하지만 잘 할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소비심리를 높이려 한다면 다른 정책들을 병행해야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준구 교수님 말씀대로 기업이 돈을 풀도록 독려하는 일도방법일 수 있습니다. 적절한 투자처를 찾아주고 노동시장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