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편지-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생각하는가
아침 산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의 그리움을?

그리고 순실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순실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순실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 사장에 앉아 그 소솔한 비취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 날같이 다시 만나세
갓 트인 연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 날같이 다시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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